서울시립종합노인복지관에 드나든 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
점심을 제공해주는 복지관은 그래서 아침을 거르는 나에게는 좋은 식당(?)이다.
11시 넘어 집을 나서면 점심시간에 맞게 도착하게 되어 있어
노인에게 어울리는 질축한 밥에 싱거운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오늘도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으렸더니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가구방문을 오겠다고.....
그런데 다행히 점심을 사겠다는 최원영씨의 전화가 와서
오늘은 입이 호사하게 생겼다. 복지관에는 다음에 가기로 하고.
그러고보니 오늘이 말복이라 최원영씨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비가 구성지게 왔었다.
세차게 퍼붓다가도 다시 느슨하게 내리는 비가 꼭 내 마음을 닮았다.
어수선하고 우울하고 울고 싶을 만큼이나 흐린 그런 날....
그래서 기분을 전환하고자 광화문 시네큐브에 가서
영화 '어떤 만남'을 보았다.
기분은 여전히 가라앉아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와 동화되지 못했다.
프랑스영화로서 장년의 유부남과 유뷰녀의 사랑 이야기
일종의 바람기의 러브스토리.....
집에 와서 맥주 한 통으로 기분을 달랬다.
그리고 다시 날이 밝으니
어제의 기분은 사라지고 새로운 날에, 새로운 기분으로
구청에서 오는 방문자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얘기, 저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죽은 아들 얘기가 나오니 눈물이 절로 흐르고
복지에 관한 대화를 하는 동안에는 야릇하게 부끄럽고 고마운 생각에 착잡해진다.
얘기가 다 끝나자 방충망 뚫어진 데 없느냐고 물어서 창문을 가리켰더니
테이프로 막아주기까지 한다.
고맙다.
우리집에 천사가 찾아와 이렇게 나를 도와주다니......
고마운 일이다.
명찰을 찍으렸더니 잘 찍히지 않아 이름을 적었다.
용산구청 주민생활 지원과의 더함복지 상담사들
배효숙씨, 석은희씨 그리고 이순남씨... 두루 고맙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달에 통장에 들어온 복지금 20만원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어서
나도 더 절약해 더좋은 일에 써야지 하고 결의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나이에 나라와 겨례를 위해 할 일은 없겠지만
나라와 겨례에 방해되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족한 게 아닐까 하면서
자위합니다.
비가 오다 그쳤다 하는 번거로운 장마철에
나도 자연을 닮아 울다 웃는 그런 날을 보낸다.
그러나 좋은 날이 항상 하는 것도 아니고 나쁜 날이 항상 하는 것도 아니니
너무 민감하지 말아야할 일이다.
그들이 놓고 간 테프를 치우면서 그들의 사랑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러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 모양으로 나를 위로해주시니 무슨 불평을 하겠습니까?
이제 나를 찾아오는 최원영씨를 맞으려 지하철입구로 갑니다.
두루 살펴주시옵기 바라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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