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봄날씨다.
날이 흐린 듯, 구름에 갇히다가는 다시 얼굴을 내밀면
따뜻한 햇살이 피부를 간지럽히고
그런가 하면 다시 바람이 불어대는 변덕스러운 날씨.
그런 봄날에 나는 한택식물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그곳은 좀 멀기에 벼르지 않으면 갈 수가 없는 곳이다.
자동차 아니고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그 절차가 복잡하여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하는데
편도에 네 시간이 걸리니 왕복 여덟 시간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겨우 복수초만 보고 왔다.
그래도 좋다.조용한 산길을 혼자 걷는 것도 좋으니까....
아직도 식물원은 깊은 겨울잠에 들어 있고
직원만이 여기저기서 낙엽을 쓸어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별세한 정태범 교수의 산문집에서
그분은 유난히 복수초를 좋아한다고 썼다.. 하긴 그분만이 아니라
일본 국민들은 거의 복수초를 사랑한다.
새해 들어 하얀 눈 속에서 노란 얼굴을 내미는 신비한 복수초를 보는 것만으로도
복을 받았다고 믿을 만큼 행복한 복수초
그 복수초가 여기 한택식물원에 지천으로 있어 나는 3월이면 이곳을 찾는다.
복수초에도 종류가 많아 더 예쁜 것도 있고 덜 예쁜 것도 있다.
내 집에서 키운 복수초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나오는 그런 복수초였는데
오늘 사방으로 핀 복수초를 둘러놓고 나는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마치 동화에서 나오는 요정이 꽃과 함께 점심을 먹는 그런 장면을 억측하면서
혼자 흐믓햇다.
빛깔도 곱고, 꽃잎도 고운.... 향기마저 고운 복수초에 모여든
벌외에도 날벌레들이 열심히 꿀을 따먹고 있다.
복수초 외에도 지금쯤은 노루귀, 괭이눈, 앉은부채 등이 피어있겠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갈 수 없어 겨우 복수초만 만났다.
설명판을 보며 계수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뭇잎이 무성할 때 다시 와봐야지 하면서.....
전문사진가? 아니면 공부하는 카메라맨?
후래쉬를 비쳐가며 사진을 찍게 하는 사람은 선생인듯 한데
부럽다. 나도 그런 날이 있으면 좋으련만....
건너편에 풍년화가 피어있는줄 알지만 거기까지 갈 기운이 없어
멀찌감치에서 셔터를 눌렀다.
해마다 이맘때 한택식물원에 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벌써 한계가 왔나?
뒤늦게 진통제 한 알을 먹었다.
한택식물원에서 2시40분에 버스를 탔는데 집에 오니 여섯 시.
정자역에서 신분당선을 타려는데 주위가 밝은 것이
마치 나목 틈에 핀 복수초처럼 지하철에도 환한 꽃이 피어있다.
내가 해마다 기분 좋게 사는 건 해마다 한택식물원에 와서
복수초와 눈 마주하며 대화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올해도 좋은 한해가 될 것이라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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