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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서(2012-04-11 12:43:22, Hit : 2285, Vote : 581
 諸葛亮 편

 

 

제갈량(181~234)은 삼국시대 촉의 대신이자 걸출한 정치가로 자는 공명이다.

낭야 陽都(지금의 산동성 기남 남쪽) 사람으로 후세사람들은 그의 자를 따서 흔히 '제갈공명' 또는

'공명 선생'이라 불렀다. 동한 말 세상이 혼란해 빠지자 숙부 諸葛玄을 따라 형주로 와서 劉表에게

몸을 맡겼다. 제갈량은 남양 융중(지금의 호북성 양번 서쪽)에 은거하며 농사를 짓고 살았다. 당시 그는

스스로를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을 최초로 패자로 만든 대정치가 管仲과 전국시대 연나라의 명장 樂毅에 비유했다.

 

건안 12년(207년) 劉備가 그의 명성을 듣고 三顧草廬 끝에 그를 발탁했다. 제갈량은 동으로 손권과 연합하고 서로는 형주와 익주를 근거지로 삼아 남으로 夷. 越과 화친하고 북쪽의 조조에세 대항하면서 기회를 기다리다 중원을 도모해야 한다는

이른바 隆中對策을 건의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天下三分之計'다.

이렇게 해서 이후 촉한 정권의 전체적 전략이 마련되었고, 제갈량은 유비이 유력한 참모한 참모가 되었다.

이듬해인 208년 조조가 남쪽 정벌에 나서자 제갈량은 강동의 주유. 노숙과 힘을 합치기로 하고 몸소 동오로 가서

손권을 설득, 손권과 유비의 연합을 이끌어냄으로써 '赤壁大戰'의 승리를 창출했다. 이후 유비가 형주의 네 군을 얻는 일을 돕고 軍師中郞將이 되어 출정했다. 후에 형주에서 군대를 이끌고 장강을 거슬러 촉으로 들어가서 성도를 공격하는 유비를 도와 유장 정권을 엎고 익주를 빼앗았다. 잏우 軍師將軍으로 승진했다.

 

유비가 정벌에 나서면 제갈량은 성도를 지키며 후방을 튼튼히 하고 군량 보급선을 확보했다. 유비가 황제를 자칭하며

제갈량을 숭상. 錄尙書事로 임명했다. 장무 3년(223년), 유비는 자신의 병이 가망없다는 것을 알고 제갈량에게 아들 劉禪을

부탁하고 죽었다.

 

 

제갈량은 서남쪽의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강경책과 온건책을 병행했다. 건흥 3년(225년) 남중(지금의 운남성과 귀주성 지역)에서 권문헤족의 반란이 일어나자 몸소 대군을 이끌고 불모지 깊숙이 들어가 토벌을 단행, 우두머리에 타격을 가하는

동시에 그 지역의 세력가를 끌어들이는 데 주력했다. 그들 중 일부는 지방장관으로 기용했다. 이로써 이 지역의 통치는

기본적으로 안정을 얻었고, 촉에 필요한 물자와 병력을 제공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제갈량은 오나라와 연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 차례 북벌을 단행했다. 심혈을 기울여 조조의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한

황실을 부활시키려 했으나 현격한 역량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계속 실패했다. 건흥12년(234년) 마지막 불벌 중 전방 오장원 전투에서 패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시호는  忠武候다. 후대 봉건 통치자들에게 "있는 힘을 다해 충성하되 죽어도

유감을 남기지 않는" 충신의 전형으로 평가받았다. 24편, 백만 자에 이르는 <제갈량집>을 남겼다.

 

제갈량의 공부법을 살피기에 앞서 제갈량의 인품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고 넘어가자.

제갈량은 지금의 호북성 양번에 해당하는 남양유중이란 곳에 은거해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천하 정세를 놓치지 않고 파악하고 있었다. '삼고초려"하며 그를 찾은 유비에게 천하를 삼분하는 거시적 방략인 이른바

융중대책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천하 정세를 분석하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들에게 강조한

'냉정하지 않으면 멀리 내다볼 수 없다'는 충고는 다름 아닌 그런 자신의 경험을 압축한 것이다.

 

 

 

제갈량의 공부법은 ' 그 대략만 보는 것'이다. 이를 '觀其大略'이라고 하는데, 제갈량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되었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제갈량의 이런 공부법은 과학적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책에 담긴 실질과 요점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깨치는 독서법이다. 또 '대략'이란 단어에는 전략적 통솔과 같은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대목에 대한 옛날 주석을 보면 "대략이나 그 대강만 파악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제갈량의 이런 공부법은 그가 젊은 날 水鏡  선생 司馬徽 문하에서 공부할 때 일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사마휘는

엄격한 규율과 수업 방시기으로 유명했는데, 3년 동안 수업을 받고 마지막 졸업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증을 주는

교육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졸업시험이 여간 까다롭지 않아 학생들이 하나같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엿다. 커닝도 심심치 않게 벌어졋다. 문제는 스승 사마휘가 지기접 냈다.

 

3년간  수업을 마친 제갈량은 졸업시험 문제를 받아들고는 기가 막혔다. 어떤 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수경산장에 남아 있는 관련 비석의 내용을 보면 화가 난 제갈량이 시험장을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그러고는 책밖에 모르는 선생이 이따위 문제를 냈다면 3년간 낸 수업료를 돌려달라고 하의했다고 한다. 아마  책에 나오는 자잘한 내용 따위를 기억해 쓰게

하는 문제였던 것 같다. 사마휘고 이런 제갈량의 반응에 어처구니가 없엇지만 그의 성품과 포부 그리고 공부하는 방식을

잘 아는 터라 그를 1등으로 뽑고 나중에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소개하기에 이른다.

 

배움이란 차분해야 뜻을 지극히 할 수 있다

 

제갈량은 자식 교육에도 상당힌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남긴 <戒子書>는 자식 교육과 관련해

명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갈량의 공부법과 관련해 참고가 될 만한 문장이므로 아래에 소개한다.

 

-무릇 사내(군자)의 행동은 차분함(냉정)으로 자신을 수양하고 근검절약으로 덕을 기르는 것이다. 맑고 투명하지

않으면 뜻을 바로 세울 수 없으며, 냉정하지 않으면 멀리 내다볼 수 없다. 모름지기 배움이란 차분해야 뜻을 지극히

할 수 있다.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노력해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노력해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노력해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뜻을 세지 않으면 배운 바를 성취할 수 없다. 게을러서는 분발해 정진할 없고, 사납고 급해서는

좋은 품성을 가질 수 없다. 나이는 세월과 함께 흘러가고 세운 의지도 시간과 함께 사라져 끝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름한 초가집만 처량하게 지킨다면 그때 가서 호회해도 늦으리라.




鄭周泳 (2012-04-13 09:15:38)  
625사변중에 피난을 못가고 숨어살면서 집에 있던 吉川英治 의 삼국지와 宮本武蔵 를
닥치는 대로 읽었던 생각이 나는군요.
제가 알고 있는 제갈공명은 그게 다 이고 이제 그나마 흐릿한 그림입니다.
"차분함으로 자신을 수양하고 근검절약으로 덕을 기르라"
새겨 들을 구절이군요.
제컴엔 요즘 올리시는글의 사진이 안 나오는데 다른 분은 그런 문제 없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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