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하고 (一日之計는 在於寅하고)
한해의 계획은 봄에 세운다 (一年之計는 在於春하고...)는
글귀를 새삼스레 떠올리며 입춘을 맞이했다.
그렇다.
음력으로 따지면 이제 정월이지만
양력으로 하면 벌써 2월에 들어선 것인데
나는 무엇을 계획했으며 무엇을 실천하고 있었는지?
자문해 보지만 떳떳한 답이 나올 리 없다.
아플 때는 아픔에 시달리고
힘이 없을 때는 늙음을 핑계댔지만
이제 시간이 없다는 핑계라도 대면 구실이 설까?
대문이 없어 입춘방을 써 붙이지는 못했지만
立春大吉 建陽多慶
사람들 가슴마다에 붙어있을 기원과 소망
안개 자욱한 창밖을 내다보며 일과를 생각하는데...
전화가 왔다.
"오늘 뭘 해?"
이틀 전에 보고 싶어 전화를 했더니 바쁘다는 친구의 말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던 내 음성을 알아차렸던지
오늘은 친구의 권유가 있었다.
두 말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정말 분당은 멀다. 생활환경이 넓어서이기도 하지만
만나기엔 많은 시간을 거리에 뿌려야 한다.
마을버스와 세 번의 전철을 갈아타고 덕소에 도착했다.
그곳엔 멋있는 벤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구리시에 있는 예쁜 식당으로 데리고 갔는데
간판에 있듯이 정통중국식당...빛깔부터 다르다.
마치 중국 본토에라도 간 듯한 느낌
붉은 빛깔은 내 호기심에 불을 붙여
두리번거리면서 사진을 찍는데
어지러운 장식과 화사함에 나는 넋이 빠지고 말았다.
60이 넘어 카레이서로 상까지 받은 원더 우먼인 친구는
못만지는 기계가 없다. 컴퓨터는 박사이고...
인정이 많고, 의리가 있고, 만사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늦은 아침을 먹어서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맥주 한 컵으로 식욕을 돋구니 굴짬뽕이 맛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굴짬뽕...국물이 시원하고 국수도 맛있다.
점심을 먹고나서 우리는 영화관으로 갔다.
그저 친구가 하는대로, 가는대로 나는 뒤따랐다.
극장표를 받아들고서야 내가 볼 영화가 무엇인지 알았다.
관객은 제법 있었고, 친구는 연신 웃곤 하는데, 왜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정서가 매말랐던지, 아니면 다큐멘터리같은 것을 좋아해서였던지.....
나에게 문제 있음을 반성했지만, 어쩌는 수가 없는 노릇.
훤
훤해서 구리시를 떠났건만 집에 돌아올 때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구리시를 가보아서였던지 조금 낯설고 조금 흥분했다.
경기도에도 시가 꽤 있음에 놀라고, 한강을 끼고 존재하는 도시가 부럽다.
가을이면 코스모스세계가 펼쳐진다는 구리시의 강변의
감상을 함께 하기로 하였으니, 올 가을까지의 나의 삶은 저당잡힌 거나 다름없다.
불확실한 삶이지만, 그래도 삶을 소중하게 느끼며 오늘을 보냈다.
친구와 함께한 입춘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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