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周泳(2005-09-23 19:12:17, Hit : 2785, Vote : 684
 밝은 사회를 위해 노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제목:
버릇없는 젊은이 잘 타일러 세대간 불화 완화...
받아들여지지 않는 질책 남발하면 낭패만 당해



한남동 한 골목길에서 일어난 일

얼마 전 한남동 한 골목길에서 검정색 양복에 넥타이를 맨 60대 중반 신사가 몰고 가던 체어맨을 길 한 가운데 세워두고 차에서 내려 20대 중반 젊은 사나이와 동네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기세가 곧 육탄전이라도 벌릴 것 같은 양상이었다.

“이 새끼 때려봐” 젊은이가 늙은이를 향하여 소리쳤다. “이 새끼 내가 너를 때리면 내 신세 망쳐... 그래서 못 때리는 거야!” 늙은이가 되받았다. 젊은이가 ‘오토바이’를 옆에 세워 둔 것을 보니 필경은 체어맨과 ‘오토바이’가 좁은 골목길을 가다가 누구의 잘못인지는 몰라도 상대방의 주행을 방해한 것 같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모두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두 사람간의 다툼이 생사에 관한 문제 때문이 아니고 누가 길을 양보하느냐와 같은 다분히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젊은이가 참고 가요. 그래도 상대방은 노인 아니요? 젊은이도 생전 늙지 않을 것 같소? 당신도 늙는다구... 이런 일로 화를 내면 사고내기 딱 좋아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자 가요!” 필자가 젊은이에게 타일렀다. 젊은이는 폭음을 내면서 ‘오토바이’를 몰고 떠났다.



서울역 지하철 매표소 앞의 한 노인

70대 후반의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표를 사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앞질러 매표원에게 다가가서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표를 달라고 했다. 매표원이 “줄을 서서 차례대로 오면 표를 드리겠다.”고 하면서 표를 주지 않았다. 노인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매표원이 스피커를 통하여 큰 소리고 “줄을 서라”고 세 번이나 외쳤다. 하는 수 없이 노인은 되돌아가서 줄 맨 끝에 가서 섰다. 얼굴에 몸이 불편한 것이 역역이 보이는 노인에게 예외적으로 표를 한 장 ‘던져’주어도 줄을 선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줄 설 것을 고집하는 매표원의 행동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니 표를 주라”고 매표인에게 얘기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했다.



‘웬 클랙슨이야?’

이것은 얼마 전 필자가 직접 경험한 얘기다. 아현동 가구 골목길을 무심코 걸어가는데 (이 골목에는 차도와 인도의 구별이 없다) 바로 뒤에서 갑자기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나서 혼비백산하여 돌아보니 바로 뒤에 자동차가 서 있었다. 운전석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사람 뒤에서 웬 클랙슨이야?” 운전자가 검은 유리창을 내렸다. 20대 후반 젊은이. 계속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가는데 뒤에서 클랙슨을 크게 누르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는 거 아니야!” “뒤에서 한 참 따라가다가 할 수 없이 눌렀습니다.” 젊은이가 대답했다. 그 후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계속되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거요.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지... 앞으로는 그러지 마시오.”
“미안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소리는 지르십니까?”
“소리 지른 것은 미안해요. 그런데 앞으로는 그러지 마시오.”

그리고는 젊은이는 차를 몰고 가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젊은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었을 텐데....어른이 젊은 사람에게 체면도 없이....” 그러나 “사람의 잘못을 꾸중함에 있어서도 꾸중을 듣는 사람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이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 조용히 타일렀으면 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가능성은 상대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상대방이 꾸중(항의)을 받아들여 다행이었지 만일 “길 한가운데를 걸어 간 당신 잘못이 아니야?”하고 달려들었으면 오히려 창피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젊은 놈들이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한 질책은 질책을 받는 사람이 이를 받아드릴 때 효력이 있고 변화가 가능하다. 탈무드는 “잘못에 대하여는 백번이고 잘못을 행한 사람이 질책을 받아들일 때까지 질책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탈무드는 또한 “질책을 받아드릴 사람을 질책하는 것이 계명(commandment)인 것과 같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질책은 이를 말하지 않는 것도 계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질책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 특히 준법정신이 이완되고 어른에 대한 공경과 같은 계명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노인이 낭패를 당하는 일이 많은데 그 원인의 하나는 노인들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 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질책‘을 아무에게나 남발하기 때문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노인이 질책을 할 때는, 질책의 방법이나 표현에 있어서, 특히 그 질책이 젊은이들에 대한 질책일 때, 그것이 질책으로 받아들여 질 것인지를 판단하여 적절히 상황에 대처하지 않으면 낭패나 창피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첫 걸음은 ‘요즘 젊은 놈들은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잠재의식에서 깨어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에서 깨어나 질책보다는 ‘버릇없는 젊은이’를 알아듣도록 잘 타 이르고 가르치는 것은 세대간 불화를 완화하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노인들이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인지도 모른다. (끝)

박동순(전 주 이스라엘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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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明淑 (2005-09-23 23:53:08)  
참 좋은 글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노인되기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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