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周泳(2009-05-11 19:22:31, Hit : 2334, Vote :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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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장영희 교수의 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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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

얼마 전 어느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 최근 몇 년간 나에 대한 기사는

  거의 암 환자 장영희, 투병하는 장영희에 국한돼서 그냥 인간 장영희,

  선생으로서의 장영희에 초점을 두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나는 문학의 중요성, 신세대 대학생에 대한 생각 등을 열심히 성의껏

  말했다. 오늘 온 잡지를 보니 기사 제목이 ‘신체장애로 천형(天刑) 같은

  삶을 극복하고 일어선 이 시대의 희망의 상징 장영희’였다.

  기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난 심히 불쾌했다.

  어떻게 감히 남의 삶을 ‘천형’이라고 부르는가.

  맞다. 나는 1급 신체장애인이고, 암 투병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내 삶을 천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신체장애가 끔찍하고

  비참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듯이 나름대로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신체적 불편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건 단지 신체적 능력만을 능력으로 평가하는 비장애인의

  오만이다. 서울 명혜학교 복도에는 윤석중 씨가 쓴 다음과 같은 시가 걸려 있다.

  장애를 천형이라 말하는 오만

  ‘사람눈 밝으면 얼마나 밝으랴/사람귀 밝으면 얼마나 밝으랴/

  산 너머 못 보기는 마찬가지/강 너머 못 듣기는 마찬가지/

  마음눈 밝으면 마음귀 밝으면/어둠은 사라지고 새 세상 열리네/

  달리자 마음속 자유의 길/오르자 마음속 평화동산/

  남 대신 아픔을 견디는 괴로움/남 대신 눈물을 흘리는 외로움/

  우리가 덜어주자 그 괴로움/우리가 달래주자 그 외로움.’

  영어 속담에 ‘Count your blessings(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라는 말이

  있다. 누구의 삶에나 많은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다.

  ‘천형’이라고 불리는 내 삶에도 축복은 있다. 첫째, 나는 인간이다.

  개나 소, 말, 바퀴벌레, 엉겅퀴, 지렁이가 아니라 나는 인간이다.

  지난여름 여섯 살배기 조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는데 돈을 받고 어린아이를

  말에 태워 주는 곳이 있었다. 예닐곱 마리의 말이 어린아이를 한 명씩 등에

  태우고 줄지어 원을 그리며 돌고 또 돌았다. 목에는 각기 평야 질주 번개 무지개

  바람 등 무한한 자유를 의미하는 이름표를 달고 말들은 직경 5m나 될까 말까

  한 좁은 공간을 종일 터벅터벅 돌았다. 아, 그 초점 없고 슬픈 눈. 난 그때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축복에 새삼 감격하고 감사했다. 둘째, 내 주위에는

  늘 좋은 사람만 있다. 좋은 부모님과 많은 형제 사이에서 태어난 축복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주변에는 늘 마음 따뜻한 사람, 똑똑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들을 만난 것을 난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내겐 내가 사랑하는 일이 있다.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난 대통령 장관

  재벌보다 선생이 훨씬 보람 있고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한국에서 손꼽히는 좋은 대학에서 똑똑한 우리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내겐 천운이다.

  넷째, 난 남이 가르치면 알아들을 줄 아는 머리, 남이 아파하면 나도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 몸은 멀쩡하다손 쳐도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안하무인,

  남을 아프게 해 놓고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듯한 이상한 사람이 많은데,

  적어도 기본적 지력과 양심을 타고난 것은 이 시대에 천운이다.

  누가 뭐래도 내 삶은 축복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 멋진 세상에 사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얼마 전 다시 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마리아가 대령과 사랑에 빠져 ‘그 무언가 좋은 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 ‘내 어린 시절 난 나쁜 애였고, 내 청소년기는

  힘들었지만 이제 이렇게 당신을 만났으니 내가 과거에 그 무언가 좋은 일을

  했음에 틀림없어요….’

  이렇게 많은 축복을 누리며 살고 있으니 전생에 난 ‘그 무언가 좋은 일’만 많이

  하는 천사였는지…. 아참, 내가 누리는 축복 중에 중요한 걸 하나 빠뜨렸다.

  ‘동아광장’의 필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한데 이렇게 동아광장에서

  독자를 만나니, 누가 뭐래도 내 삶은 ‘천형’은커녕 ‘천혜(天惠)’의 삶이다.




  






李明淑 (2009-05-13 13:33:42)  
보통 같으면 도저히 견디기 힘든 一級장애+ 암까지,
"쓸어질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익히게 하려는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밝게 살다 간
장영희교수.."누가 뭐래도 내 삶은 '天惠의 삶'이다"고 자신의
힘든 삶을 축복받은 삶으로 받아드리고 살다 간 장영희교수...
그는 자랑스런 우리 부고의 후배동문이었습니다.
그의 밝은 글을 읽고, 삶을 알고 四肢五體만족한 나 자신이,
그저 멍하니 세월을 흘려보낸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집니다.
삼가 장교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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