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周泳(2014-01-02 14:06:13, Hit : 1209, Vote : 188
 38xycjsy9.gif (13.7 KB), Download : 15
 어리석은 노인의 뒤늦은 반성


  
황기춘 오솔길

어리석은 노인의 뒤늦은 반성
2014.01.02



되도록 나이를 잊고 살자는 습성이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노인의 건강에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오로지 만사에 치밀함과 계획성이 부족한 성격 탓으로 생긴 결과였습니다. 나이 핑계로 점잔을 빼지 않아 대하기 좋다는 사람도 있는 한편, 나이 값을 못한다는 핀잔을 뒤에서 들은 것 같은 경우도 있어 반성할 때도 있었습니다.

환갑이란 인생의 뜻있는 이정표를 맞은 것은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0년 뒤의 칠순 잔치도 아직 외국 매체 일을 하고 있을 때라 그저 쑥스럽게 생각할 뿐, 자신의 나이가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한 감회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80대에 들어서 젊을 때 즐기던 골프나 테니스는 완전히 접었으나, 등산을 즐기고 집 가까이 야산을 도는 산책은 거의 매일 빠뜨리지 않으며, 나이를 잊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간 리조트 호텔 풀에서는 수영도 즐겼습니다.

느긋하게 건강한 노후를 즐기는 듯 보인 저에게 약간의 충격을 준 일이 지난해의 생일 때 있었습니다. 2013년 해가 밝으며 우리 나이로는 이미 아흔이 되었지만, 시내 호텔에서 아이들이 마련한 ‘구순 잔치’의 케이크를 자르며 이제 만으로도 89세가 되었구나 하는, 나이에 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게 작은 충격을 준 이 구순이라는 말은 팔순이란 말이 준 느낌과는 판이한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 살던 시골에서는 80이 넘으면 ‘넘으 나이(남의 나이)’를 먹는다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83세의 경우 ‘넘으 나이 세 살’이라고 부르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팔순을 별 감회 없이 지냈습니다.

평균수명이 80을 넘는 세상이 되었으니 담담한 심정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구순은 왜 제게 다른 느낌을 주었을까. 나이를 더 먹었기 때문일까. 얼마 동안 그 생각이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은 서유석의 노래 ‘가는 세월’을 즐겨 불렀습니다. 사석 술자리에서 그가 마이크를 잡으면 밴드는 으레 묻지도 않고 이 노래 반주를 시작했습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부를 때의 그의 표정은 매우 착잡해 보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도 가는 세월만은 어쩔 수가 없었지요. 그는 85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75세에, 김대중 전 대통령도 85세에, 그 밖의 많은 유명 정치인, 실업인, 사회 인사들이 구순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로 그런 뜻에서 구순이라는 단어가 제게 작은 충격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2014 갑오(甲午)년은 저와 구순을 뗄 수 없는 관계로 얽어맵니다. 우리 나이로는 91세가 되고, 만(滿)으로도 두 달 뒤 생일에 90이 됩니다. 지금 젊은 사람의 수명으로 ‘인생 백살’이라는 말도 흔히 쓰입니다. 이미 구순 줄에 들어선 사람에게는 이 말을 일률적으로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을 10층 구조물로 치면, 마지막 열(10) 계단에 막 들어선 사람 모두가 다 꼭대기까지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계획성 없는 저의 70~80대에, 인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세계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계단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와서 인생을 마감하기 전에 해야 할 준비가 하나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새삼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몇 년 전 어느 일본 잡지에서 유언 쓰는 법 등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자세히 설명한 특집을 읽고도 남의 일 같이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영원한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5년 전, 아내가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뒤 딸아이에게 병실을 맡기고 혼자 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 놀람과 동시에 공포에 떨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위암은 정복했으나, 그 뒤 담석 수술, 몇 번의 골절상, 저혈압, 관절염 등으로 건강연령은 저보다 훨씬 위입니다.

치매나 뇌 마비증에 걸리지 않는 한, 어느 쪽이든 영원한 이별을 위한 준비도 돼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자유칼럼의 연말 모임에서, 좌중 돌아가며 발언을 하는 기회에 갑자기 생각이 나 “저렇게 허약한 아내를 두고 혼자 먼저 갈 수는 없다.”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외쳤습니다. 누가 먼저 떠난다는 것을 어찌 인간이 결정하겠습니까. 그러나 서로가 혼자 될 때를 대비하는 마음가짐은 미리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에는 ‘인간 120세’설까지 신문에 보도됩니다. 의술의 발달로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가능할지 모를 이야기지요. 평균수명이 해마다 늘어나는 우리나라에도 100세 이상 생존자가 이미 13,00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평양 대동강 다리 교각을 필사적으로 잡고 넘는 피난민들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AP통신 동료였던 맥스 데스포(Max Desfor) 기자의 100세 생일잔치가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National Press Club)에서 열렸습니다. 이 소식을 두 달 전에 듣고 120세는 어림도 없지만, 100세는 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은 열(10) 계단을 조심스레 끝까지 올라가보려고 욕심을 내봅니다. 동시에 인생의 마무리 준비도 빨리 서두를 작정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이런 뒤늦은 반성과 결심을 해보았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1035   부라질 월드컾축구  鄭周泳 2014/07/14 1016 180
1034   인생을 바꾸는 10분의 법칙  鄭周泳 2014/07/12 978 178
1033   카레의 비밀 - 카레는 치매치료제?  鄭周泳 2014/07/07 1061 182
1032   최인호의 에세이 "인연"에서 "어머니의 유전자" [2]  鄭周泳 2014/07/05 1174 157
1031   여름철 운동(삼성서울 병원)  鄭周泳 2014/07/02 1041 147
1030   더위가 수면에 미치는 영향  鄭周泳 2014/06/30 979 163
1029   "발끝치기"로 건강유지 TV조선 영상물  鄭周泳 2014/06/28 1106 204
1028   70代를 위한 頌歌 [2]  鄭周泳 2014/06/21 1061 190
1027   뇌 이렇게하면 젊어질 수 있다  鄭周泳 2014/06/20 967 155
1026   반기문 총장의 送年辭 를 소개합니다. [1]  鄭周泳 2014/01/08 1006 178
  어리석은 노인의 뒤늦은 반성  鄭周泳 2014/01/02 1209 188
1024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鄭周泳 2014/01/01 1026 175
1023   궁굼했던 대상포진 예방접종  鄭周泳 2013/12/31 1467 198
1022   울지않은 바이올린  鄭周泳 2013/12/09 1046 183
1021   膳物이 先物이 되어서야  鄭周泳 2013/12/06 1169 196
1020   우아하고 예쁜 김연아  鄭周泳 2013/12/02 1168 206
1019   노화를 늦추는 생강식초  鄭周泳 2013/11/24 1394 192
1018   웃기는 이야기.(kgw)  鄭周泳 2013/06/25 1271 193
1017   아 ! 이제 알았다 삶이 무엇인지  鄭周泳 2013/06/19 1261 196
1016   박병준 박사와 서남표 총장 [1]  鄭周泳 2013/06/17 1431 201

[1][2] 3 [4][5][6][7][8][9][10]..[54]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