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周泳(2015-01-09 09:52:31, Hit : 2358, Vote : 220
 님아, 나를 알아보시겠소?(출처 다산연구소)


님아, 나를 알아보시겠소?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76년간의 아름다운 동행을 그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극장가의 겨울을 달구고 있다. 산골 마을 백발 부부의 은빛 로맨스에 도시의 청춘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감동 지수가 윗세대보다 더 높다는 2~30대에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랑의 무덤이라고 하는 결혼에서 사랑의 완성을 본 것일까? 이 영화로 눈가를 적신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이별하는지’를 보았다고 한다.

  일상을 함께 하며 서로를 나누고 서로를 만들어주는 그런 사랑을 동서고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꾸어 왔다. 진정한 사랑만이 참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식상하리만치 오래된 이 주제는 실천의 현장성으로 인해 늘 새로운 것이 된다. “맛있어요!”, “고마워요.”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이는 〈님아〉의 사랑은 새로움으로, 은은한 울림으로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신상’ 세대를 무장 해제시켰다. 그렇다. 『중용』에서는 비록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부부지도(夫婦之道)’라 했다.
남들도 우리같이 사랑하며 살까요?
  사랑과 이별의 부부 이야기는 고조선의 여옥(麗玉)이 지었다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서 백제의 도미(都彌)부부로 이어지고, 잇달아 유사한 많은 작품들이 나왔다. 그것은 온 백성의 노래에서부터 부부가 은밀히 주고받은 간찰에 이르기까지, 장르나 규모는 다르지만, 그 정신은 서로 통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과재(過齋) 김정묵(金正默, 1739~1799)은 죽은 아내 황씨에게 이런 고백을 한다. “그대는 나와 둘이 합하여 한몸이 되는 가까운 사이요, 서로를 알아주고 어짊을 벗 삼으며 즐거움을 나누는 사이였소. 그대는 이미 죽은 나요, 나는 아직 죽지 않은 그대라.”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둘은 헤어져 있지만, 죽은 아내와 살아있는 나는 한 몸일 뿐이라는 말이다. 즉 君卽是已死之我也(군즉시이사지아야), 我卽是未死之君也(아즉시미사지군야)! 이는 곧 드라마 속 명대사로 더 유명해진 사랑의 언어 “내 안에 너 있다”를 연상시킨다.

  16세기 안동에서 살았던 한 남성 이응태(李應台, 1556~1586년)의 묘에서 그 아내가 보낸 편지가 나왔다. 남편과 살면서 나눈 곡진한 정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언간이다. “자내는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나는 자내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매번 함께 누워 자내와 내가 이르되,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

  ‘원이 엄마’로 불리는 아내는 남편을 ‘자내[네]’라고 부른다. 이 언간은 부부 호칭의 16세기적 언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했다. 원이 엄마는 남편과 주고받았던 말과 마음을 글로 적어 먼 길을 떠나는 남편의 품에 넣었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원이 엄마는 ‘자내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소?’라고 따지기도 한다.
기억 상실한 아내 옆에서, 28년 전 죽은 아내 앞에서
  ‘조용하게’ 상영 중인, 장예모와 공리의 귀환을 알린 영화 〈5일의 마중(Coming Home)〉도 부부라는 심연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문화대혁명을 맞아 지식인 남편은 10여 년의 세월을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아내는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린다. 결국, 남편은 귀환하지만 기억을 상실한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저씨 누구세요?” 아내의 ‘외간 남자’가 된 남편은 이웃에 방을 얻어 ‘동네 아저씨’로 살아간다. 물론 그의 온몸과 마음은 아내를 향해 있다. 5일에 돌아온다는 마지막 편지만을 기억하는 아내는 남편을 마중하러 기차역으로 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월 5일이면 어김없이. 남편은 매월 그날, 아내의 길이 위험할까 멀리서 따라가 지켜본다. 그러다가 아예 자신의 이름 ‘루옌스’가 적힌 아내의 피켓을 나란히 들고 섰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아내가 기다리는 남편을 함께 기다리는 남편. 대강의 줄거리로는 세계적 영화 거장들도 줄줄 눈물 흘렸다는 〈마중〉에 아주 미안한 감이 있다.

  부부는 무엇보다 서로를 ‘알아주는[知己]’ 상호성의 원리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한다. 조선후기 영의정을 지낸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은 28년 전에 죽은 아내의 관 앞에서 ‘흰 머리가 완연한 나를 당신이 어찌 알아보시겠소?’라고 한다.

  “남편 조현명은 삼가 한 잔 술로 죽은 아내 정경부인 칠원윤씨 관 앞에 고하오. 아아! 당신이 땅에 묻힌 지 28년 만에 관을 다시 꺼내니 마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듯한데 조금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어디로 가려고 하오?”

  조현명은 7년을 함께 살다 죽은 아내를 묘 이장으로 다시 만났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을 거듭할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아내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복원해낸다. “나는 이제 장상의 지위에 올라 신하로서 누릴 수 있는 부귀를 다 누리지만 죽은 내 아내는 그러지 못한다”고 한 그에게 나라를 맡겨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의(信義), 책임감, 진정성 이런 낱말이 떠오르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이다.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축복이다. 사랑은 습관이다. 습관은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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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숙인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한국철학

· 저서
『정절의 역사』푸른역사, 2014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 도서출판 여이연, 2005
『노년의 풍경』글항아리, 2014 (공저)
『일기로 본 조선』글항아리, 2013 (공저)
『선비의 멋, 규방의 맛』글항아리, 2012 (공저) 등 다수

· 역서
『열녀전』글항아리, 2013
『여사서』도서출판 여이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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